비텐베르크는 루터가 전 유럽을 뒤흔들며 개신교를 탄생시킨 종교개혁의 진원지다. 그 당시 비텐베르크의 인구는 약 2,000 ~ 2,500명이었다. 독일 내에서도 작은 도시에 해당했지만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유럽 종교와 문화의 요충지가 되었다.
루터는 교황청으로부터 카톨릭교회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파문을 당했다. 1520년 12월 10일, 루터는 교황이 쓴 모든 책과 로마교회 법학자들의 서적, 면죄부 등을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참나무를 심었다. 처음 심었던 참나무는 1813년 프랑스군 점령 때 소실되었다. 현재의 참나무는 1830년 6월 25일 종교개혁 300주년을 기념하여 심은 것이다. 참나무 주위에는 "1520년 루터의 행함"을 기념하여 세워진 기념비도 있다.
1502년,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가 설립한 비텐베르크 대학교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중심지로서 명성을 얻었다. 종교개혁의 모교회가 구 시가지 안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탁월한 건축물인 성 마리엔(Marien) 교회다. 루터가 30년간 말씀을 전했던 교회다. 또한 라틴어가 아닌 그들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개신교 예배를 드린 첫 장소이기도 하다. 양종 성찬식이 최초로 거행되었으며 신도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었다. 1535년에는 최초로 개신교 목사의 성직 수여식이 이루어졌으며 종교개혁의 모태와 같은 곳이다. 교회 안에는 종교개혁 제단화가 있는데 이 종교개혁 제단화는 개신교회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분명히 보여준다.
비텐베르크 성교회(Schlosskirche) 는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95개 조항'을 교회 문에 붙인 바로 그역사적인 교회이다. 교회의 문에 붙은 '95개 조항'이 바로 종교개혁의 신호탄이 되었고, 이후 거센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 역사적인 문이 되었다. 이 교회에서 1524년부터 개신교 예배가 거행되었다. 교회 대문 위, 아치 중앙에는 십자가의 예수님의 모습이, 왼쪽에는 성경을 들고 있는 루터가, 오른쪽에는 아우크스부르크 신안고백서를 들고 있는 멜란히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개신교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경과 교리가 매우 중요함을 가르쳐 준다. 종교개혁자인 루터는 신학 교수로, 멜란히톤은 고전어 교수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과거 공개처형이 이루어지던 시장 광장에는 비텐베르크 시청이 위치하고 있으며 이 곳에는 두 개의 큰 청동 기념상이 있는데, 바로 루터 동상과 멜란히톤 동상이다. 오른손에는 성경을 들고 있는 루터와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를 들고 있는 멜란히톤, 이 광장에는 종교개혁자 루터와 멜란히톤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루터는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가 평생 외쳤던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자" 였다.
루터와 종교개혁자들을 통하여 우리는 각자의 모국어로 성경을 읽고, 듣고, 쓸 수 있게 되었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알게 되었다.
과천약수 교회 설동주 목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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