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항아리

2022년 10월호: 종교개혁의 새벽별 얀 후스(Jan Hus)!

상표박사 2023. 3. 13. 15:49

현재 체코 인구는 1,073만 명이며 프라하에는 13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체코는 300년간 오스트리아 지배를 받았습니다. 1, 2차 세계대전과 공산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정권의 통치, 1968년 프라하의 봄, 구소련 군대의 침입,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국가가 양분되는 등 파란만장한 역사의 굴곡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체코는 과거 공산 치하의 동유럽 지역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입니다. 또한 프라하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을 만큼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지금도 프라하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중세 시대 로마 카톨릭교회의 부패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외치다가 카톨릭과 황제 권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탄압당한 개신교들의 개혁정신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체코와 모리비아 지역에는 160년간의 극심한 박해의 시기에도 약 8만 명의 비밀 개혁교도들이 존재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프라하는 90%가 개혁교도였습니다.

얀 후스(Jan Hus, 1369(?)-1415)는 보헤미아 종교개혁의 새벽별(Morning Star)입니다. 그는 15세기 체코의 위대한 종교개혁자요 신학자요 화형으로 생을 마감한 순교자입니다. 후스는 성직 매매와 면죄부 판매를 금지했고 성직자들의 탐욕과 방탕한 생활을 비판했습니다. 교황권을 부인했으며 교회 재산권 박탈을 강조했습니다. 그당시 성찬식 진행 시 일반 신도들에게는 빵만 주고 분잔은 금하던 전통을 깨고 '성경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병, 분잔을 했습니다. 즉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후스는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면서 종교개혁의 사상을 전파했습니다. 그는 당시 4개의 학부(철학, 신학, 법학, 의학)로 이루어진 카렐대학교에서 철학부 학장(1401-1402년)과 대학총장(1402-1403년, 1409-1410년)을 지냈으며 신학부는 후스파였습니다. 체코의 종교개혁운동은 이 카렐대학이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412년에 성직자 활동 금지령으로 파문당한 후스는 1414년 독일 남부 도시 콘스탄츠(Konstantz)로 소환되어 로마 카톨릭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화형 당하여 생을 마감합니다.

사람들은 후스가 화형 당해 순교한 500주년을 기념하여 1915년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후스 동상을 세웠습니다. 동상 밑에는 "진리를 사랑하고, 권리를 말하고, 진리를 행하라" 라는 그의 명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존경받는 신앙의 선배를 배출한 체코는 오늘날 유럽에서도 무신론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경고를 줍니다.

부모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해 주지 않으면, 그 어느 나라, 그 어떤 가정, 누구의 후손이라도 하나님을 모른채 살아 갈 것이라고 . . .,

 

과천약수 교회 설동주 목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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