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체코는 크게 동부 모라비아(Moravia)와 서부와 중부의 보헤미아(Bohemia)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모라비아 지역의 사람들은 모라비안이라고 하는데,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를 추종하던 모라비안 교도들은 당시 전통주의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채 신앙의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더욱이 1415년, 얀 후스가 화형당한 이후에는 모라비안 교도들에게 더 지독한 핍박이 가해졌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체코 산맥을 넘어 독일의 종교개혁 통치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경건주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피난한 그들은 독일의 동쪽 작센 지역인 베르텔스도르프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베르텔스도르프의 넓은 땅을 상속받았던 진젠도르프 백작은 망명한 모라비안 교도들을 환영하며 먹이고 입히고 돌보아 주었고 그들이 자유롭게 신앙 생활을 하도록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을 기꺼이 섬기면서 신앙 공동체를 형성해 말씀뿐 아니라 실천을 수반하는 믿음까지 보여주었습니다. 모라비아의 형제단 사람들은 이러한 진젠도르프의 도움으로 1722년 진젠도르프의 영지 안에 헤른후트('주님의 보호'라는 의미)라 불리는 정착촌을 건설하고 큰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교도 후예들은 모라비안 교회에서 매주일 오전 9시 30분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18세기에는 진젠도르프 가족이 생활했고, 이후 여러 모라비안 교도들이 함께 살면서 예배와 기도 모임을 나누던 이 교회는 지금, 모라비안 박물관이 되어 '믿음의 유산 박물관' 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지금도 교회 의자는 매우 가벼워 이동이 용이해 교회에서 진행되는 여러 행사에 다양한 용도로 활용됩니다. 루터교회는 대체적으로 설교단이 높지만 모라비안 교회 강대상은 낮고 초라합니다. 결려있는 사진도, 조각상도 없습니다. 교회 벽은 하얀색으로 칠했는데 이는 순결을 의미하며 교회는 에덴동산처럼 깨끗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교회 2층에는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교도들과 관련된 사진들과 진젠도르프와 그의 아내 사진, 그들이 사용했던 물품들 등, 여러 전시물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손때가 묻은 문서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교도들은 헤른후트의 둥근 탑에 올라 그 땅들을 놓고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독일의 한 구석에서 생명력을 잃어가는 독일 교회와 세계 선교를 위해 릴레이 중보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적한 세계선교를 위한 기도는 무려 100년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의 중보기도를 모르고서는 근대 세계선교를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파송되어 안락한 삶을 버리고 영혼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중보기도 또한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과천약수 교회 설동주 목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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